한때 우리민족의 '빨리빨리'가 아주 나쁜 문화인것 처럼 배운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되었다.
일본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먼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메이와쿠 가케루나, 他人に 迷惑を 掛けるな)’고 가르친다고 한다.
일본인은 다른 사람에게 정말 친절하다...
어떨땐 '이사람이 속으론 어떻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웃는 얼굴로 나에게 친절어 배풀어 주는걸
까?' 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그리고 됄수 있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부모 자식간에도, 친구사이에도....
부모니까 조금은 어리광부리고, 친구이니까 조금은 신세도 지고 하면서 서로 신뢰감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극도로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어떨땐 당연히 서로를 위해 조심해야 하는거라고...
또 때로는 넘 삭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일본인들은 타 민족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치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일까?
원전 폭발사고 7등급으로 최악의 방사능 유출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과정에서 이웃나라에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 문부과학성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기술한 일반사회, 지리, 역사 교과서 12종 사회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통과시켰다.
일본 국내에서 자국민끼리는 그렇게 배려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양보 잘하는 일본인들이 왜 이렇게 무고한 그리고 과거의 역사도 뒤로 한 채 도와주려하는 이웃나라 국민들에게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것일까.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메이와쿠 가케루나(他人に 迷惑を 掛けるな)’라는 문구를 잘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문구의 이면에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남의 일에 간섭 말라는 자기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은 그 묘한 이중성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발휘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귀에 박히도록 훈련받는 가정교육의 핵심이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라 들었다. 지금은 S대 교수로 있는 친구가 동경대학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할 때 지도교수가 저녁에 초대했는데, 직역하면 “제가 당신을 저희 집의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실례를 범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했다.
그곳에서 공부하며 일본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 본 친구는 일본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민족이라 했다. 과거 막부시대에 힘을 쓰던 사무라이들을 건드리면 쉽게 목이 날아가는 시절을 오래 거쳤기에 사람을 무서워하여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아마도 일본 사람들을 예의와 배려를 미덕으로 삼는 민족이 되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일본의 배려에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과연 과연 일본인들은 타 민족에 대해서도 동일한 가치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일까?
원전 폭발사고 7등급으로 최악의 방사능 유출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과정에서 이웃나라에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 문부과학성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고 기술한 일반사회, 지리, 역사 교과서 12종 사회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통과시켰다.
일본 국내에서 자국민끼리는 그렇게 배려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양보 잘하는 일본인들이 왜 이렇게 무고한 그리고 과거의 역사도 뒤로 한 채 도와주려하는 이웃나라 국민들에게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것일까.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메이와쿠 가케루나(他人に 迷惑を 掛けるな)’라는 문구를 잘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문구의 이면에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남의 일에 간섭 말라는 자기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일본의 '배려'에 대해서 단순히 화장실에서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이 조금 선진문화라는 이유로 한국이 도저히 따라잡을수 없는 이유라고 갖다 붙이신다면 아주 흔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권리가 배려를 이긴다구요? 이건 어떤 자신감에서 만드신 일반화인가요? 이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으며, 이런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전혀 없으신 분 같습니다.
한때 '빨리빨리'문화가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만,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나쁘다고 바라본 관점이 있었지만, 100% 나쁜것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보헤미안님께서 어떤 대상을 여러각도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실수 있는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탁류세평]남을 배려하는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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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일본 동경시내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미국서 공부할 때 나리타공항에서 스탑오버(Stop-over)를 몇 차례 한 경험 외에는 일본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설렘과 기대감속에서 시작된 3일간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었다. 본인의 짧은 일본어 실력을 무척이나 원망하며, 손짓발짓과 영어로 버텨볼 심산이었다. 다행히 하네다 공항 인근의 안내센터에서 구한 국철과 지하철 지도의 도움으로 내가 원하던 호텔까지 찾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호텔 주변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한 첫날의 느낌은 깨끗함과 정숙함이었다. 둘째 날. 오후 5시경 요코하마를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였다. 사실 본인은 지하철 내에서 일본인들이 정말로 만화책을 읽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이었다. 다섯 발치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중년 남성이 한국어로 “기차 안입니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급하게 휴대전화를 끊었다. 무심히 그 장면을 흘려보내며 내 눈길을 차창 밖을 돌릴 때, 머릿속을 강하게 내리치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일본서 이틀째를 보내면서 지하철 내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을 단 한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너무나도 무안해하는 목소리로 “기차 안입니다”라는 정숙함을 깨는 한국말을 듣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익숙한 핸드폰 소음문화와의 차이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날의 느낌은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두 번째 날의 두려움은 세 번째 날 하네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이어졌고,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느낌은 부러움으로 바뀌어갔다. 정말 일본인들과 그 문화는 그럴까? 아님 내가 보낸 이틀 반 동안 유독 내가 탄 기차 안에서만 일어난 특수상황이었던가? 한국에 돌아와 일본을 잘 아는 몇몇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의 경험담을 공유하고자 질문을 드렸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일본인들은 어릴 적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는 가정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최근 우리네 가정교육은 남에게 약간의 피해를 주더라도 ‘내 자식들 기를 죽이지 않는 것’을 더욱 더 신봉하기에 이러한 공공문화의 차이가 난다고들 입을 모았다. 분하지만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해야 할 듯하다. 나조차도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당당하게 핸드폰 소음을 내었다. 우리 자신들에 대한 진실한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러한 점이 우리와 일본과의 문화의식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장애요인 중 하나 일 것이다. 매 학기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주지하는 것 중 하나가, 수업 시작시간 준수와 수업 중 핸드폰 사용 금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분정도 늦는 학생은 학기 내내 존재하고 (물론 간혹 수업종료시간에 임박해 자신 있게 들어오는 유별난 학생들도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들도 자주 보인다. 핸드폰 진동소리도 수업 중에 간간히 들린다. 어떠한 패널티가 자신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행동하는 학생들을 볼 때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패널티 자체에 본인들은 당당하다 해도, 그러한 행동이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을 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김대기(경영대학 교수·경영학과) ==> 배려는 익숙함을 낳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 남에 대한 배려보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벌어지는 불편함들은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창의력으로 발전한다. 전철안에서 통화하지 않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본과 어떻게든 통화하고 싶어하는 한국 한국은 통화대신 문자메시지를 택하고 빠른 문자입력을 위해 천지인자판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 무료로 texting할 수 있는 카카오톡을 개발해 냈다. 한국인은 야생마나 사냥개같은 야성이 살아있는 민족이며 남에대한 배려나 어떤 규율에 억메이기 보다는 '자기중심'을 포기하지 않는 점을 이렇게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
일방통행의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쌍방향의 커뮤티케이션을 선호한다.
한방향을 바라보고 하는 오페라가 아닌
관객이 둥글게 에워싸고 추임새도 넣으며 참여하는 판소리나 창극,
스타의 콘서트에 구경을 가더라도 떼창으로 스타를 감동시키며,
스타몰래 종이비행기 날리기 이벤트나 금가루 이벤트로 스타를 놀래키는 것이
바로 한국인이다.
교수님은 수업에 집중안하는 학생들이 원망스럽겠지만,
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수업에만 집중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싸이를 보라!
음악을 하고싶어서 부모님을 속이고 학교를 옮겼으며,
집에서 돈을 안대주자 불법CD를 만들어 팔아서 자급자족했으며,
대마초를 피우다 감옥에 가기도 했고
방위산업체 근무당시에도 퇴근후 콘서트를 하다가
영리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군대에 한번 더갔다왔다.
그런 싸이에게 전 세계가 반했다.
물론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타인중심의 사고와 배려에 익숙한
일본인의 경우에는 절대로 싸이와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캐릭터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선] "남에게 피해주지 마라" 늘 강조
[중앙일보] 입력 2002.08.07 19:40 / 수정 2005.10.13 00:32말 안들을 땐 매질로 가르쳐
일본 지지(時事)통신 서울특파원 요시다 겐이치(吉田健一.35)기자는 "어릴 때 부모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였으며, 30년이 지난 지금 아이에게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말"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일본에서는 여간해서 아이에게 매를 들지 않지만 예절에 관해서는 예외"라고 말했다. 자신은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자녀와 '예절 약속'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지 않기''부모님이 출근할 때 반드시 머리를 숙여 인사하기''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기''친구 집에서 놀고난 뒤에는 장난감을 정돈하기' 등이다. 약속을 어기면 엄하게 벌하기로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힐튼호텔의 샌디 머레이(39)이사는 "호주의 경우 어린이가 어른이 하는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며, 함부로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딸 앨릭스(12)가 다섯살이 되기 전까지 호텔.식당 등 공공 장소에 데려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나이 때는 아이에게 주의를 줘도 어른들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다섯살 이후에도 음식점이나 콘서트홀에 함께 갈 때는 조심할 점을 미리 일러주고, 행여 지루해할 것에 대비해 펜과 노트, 그림책, 작은 장난감 등도 챙겼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 교육도 '패밀리 비즈니스'인 만큼 나름대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틈틈이 육아와 관련된 전문서적을 10여권씩이나 읽었다고 했다. "사회의 기본 요소가 가정이고, 바로 여기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그는 "요즘 일본에서는 여간해서 아이에게 매를 들지 않지만 예절에 관해서는 예외"라고 말했다. 자신은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자녀와 '예절 약속'을 맺었다고 소개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지 않기''부모님이 출근할 때 반드시 머리를 숙여 인사하기''음식은 절대 남기지 않기''친구 집에서 놀고난 뒤에는 장난감을 정돈하기' 등이다. 약속을 어기면 엄하게 벌하기로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힐튼호텔의 샌디 머레이(39)이사는 "호주의 경우 어린이가 어른이 하는 말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며, 함부로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교육도 '패밀리 비즈니스'인 만큼 나름대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틈틈이 육아와 관련된 전문서적을 10여권씩이나 읽었다고 했다. "사회의 기본 요소가 가정이고, 바로 여기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 지나치게 어른중심의 사고. 아이의 창의성을 키울 기회를 박탁.
첫 번째로 일본인은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이 매우 익숙한 나라다. 책 내용은 이렇다.
“일본인들은 상부의 지시와 매뉴얼대로 행동할 뿐만 아리나 완벽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겼을 때 조직에서는 반드시 그 사례를 상부에 보고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앞으로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직원들이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 작성을 시작한다. 경영자들은 완벽한 매뉴얼을 만들어내고 직원들은 매뉴얼대로 움직이고...”(P.62)
아마도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독특한 사고가 큰 재앙이 닥쳤을 때에도 틈틈이 지진에 대응하는 훈련 연습을 수없이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된다. 매뉴얼의 표본이기도 한 표지판과 스티커가 그 행동에 한 몫 한다.
“표지판을 꼼꼼한 내용으로 적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일본인들은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어떤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당국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를 검사한다. 그리고 책임소재가 밝혀지면 책임자는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법적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일본은 어디를 가더라도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주의 스티커를 짜증날 정도로 붙인다.”(P.65)
두 번째는 일본인이 어려서부터 배워온 시쯔케 교육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는 말은 일본인이 자라면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라고 한다. 이런 교육을 시쯔케 교육이라고 하는데 일찍이 이런 가정교육부터 시작하여 일본인들은 조용히 참을성 있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이다.
‘일본식 조직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생활, 회사로부터 또 한번의 ‘시쯔케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일본식 비즈니스 매너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치와 배려심이다. 그런 행동이 일본 사회생활의 기본이며 인격의 평가기준이 되는 것이다.
==> 매뉴얼대로? 매뉴얼을 철저히 만들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 말 그대로 창의성 제로의 어떤 틀속에 사고를 가두는 멍청한 짓이자 시간낭비가 될 수도 있는 데에 시간을 소비하고 있음. ==> 이건이 인격의 평가기준? 지랄도 정도것!
한국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참 똑똑한 사람이 많다. 똑똑한 사람보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 똑똑한 척이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든다. 남보다 내가 더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는 것이 똑똑한 척이 될 것 이다.이 똑똑함이 한국에서의 곧 일등만이 존재하는 교육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 똑똑한 사람 몇 있었다. 똑똑한 척이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자기의 얼토당토하지 않은 의견을 내놓아서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니 그냥 먹어주는 척 할 수 밖에. 그것도 남의 이야기 도중에 말을 막으며 끼여 들면서 하는 똑똑한 척이다. 일본에서는 일단 그런 사람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타인과의 대화가 좀 편하다고 봐도 된다.
일본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이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서 알게 모르게 어린애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본다.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은, 일단 출발점에 서도 자신이 없으면 반걸음 앞으로 나서지를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반걸음 뒤로 물러 선다고 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자신도 없는데 남을 밀어 젖힌다면 피해를 주는 것이니까.
길에서 전차에서 모르는 사람과 서로 부딪치는 경우 등등, 사람속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쓸데없는 조그만 트러블 정도라면 당연히 있는 일이다. 이때에 한국과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우선 상대방에게 내가 잘했고, 네가 잘못했다 라고해서 안 싸워도 될 일이 서로 싸움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라고 서로가 먼저 머리를 숙이니, 필요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같은 출발점에서 자기가 반걸음 뒤로 물러서 버리자는 발상에서 이다.
술집 등에 가면 좁은 카운터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옆에서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서로가 어지간히 술이 들어가도 싸움이 없다. 좁은 공간에서 옆 사람이 되어 앉아 있으니, 서로 트러블이 일어날 일도 허다한데 말이다. 그런데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마시고 싶은 술 말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하찮은 일에는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마니 싸움이 적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이렇게 앉혀놓고 장사를 하게 되면 아마도 매일 경찰 백차가 오게 될 것이니 장사가 성립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 해보곤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포장마차라는 술집도 있지만, 그런 자리보다 일본의 자리는 더 비좁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깨를 맞부딪치며 앉아있어야 한다.
타인과의 대화 과정에서도 자기가 자신이 없으면, 듣는 입장이 되어주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으니, 피해도 주지 말아 주시요 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남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고, 서로가 상대편의 깊숙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서로가 피하게 된다. 사무적인 인간 관계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이러다보니 일단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인적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한국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다 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그러나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일본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더 끈적끈적한 인간의 정으로 어우러져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일본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이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에서 알게 모르게 어린애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본다.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은, 일단 출발점에 서도 자신이 없으면 반걸음 앞으로 나서지를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반걸음 뒤로 물러 선다고 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자신도 없는데 남을 밀어 젖힌다면 피해를 주는 것이니까.
길에서 전차에서 모르는 사람과 서로 부딪치는 경우 등등, 사람속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쓸데없는 조그만 트러블 정도라면 당연히 있는 일이다. 이때에 한국과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우선 상대방에게 내가 잘했고, 네가 잘못했다 라고해서 안 싸워도 될 일이 서로 싸움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라고 서로가 먼저 머리를 숙이니, 필요 없는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같은 출발점에서 자기가 반걸음 뒤로 물러서 버리자는 발상에서 이다.
술집 등에 가면 좁은 카운터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옆에서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서로가 어지간히 술이 들어가도 싸움이 없다. 좁은 공간에서 옆 사람이 되어 앉아 있으니, 서로 트러블이 일어날 일도 허다한데 말이다. 그런데 조용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마시고 싶은 술 말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하찮은 일에는 내가 먼저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마니 싸움이 적어지게 된다. 한국에서 이렇게 앉혀놓고 장사를 하게 되면 아마도 매일 경찰 백차가 오게 될 것이니 장사가 성립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 해보곤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포장마차라는 술집도 있지만, 그런 자리보다 일본의 자리는 더 비좁아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깨를 맞부딪치며 앉아있어야 한다.
타인과의 대화 과정에서도 자기가 자신이 없으면, 듣는 입장이 되어주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으니, 피해도 주지 말아 주시요 라고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남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고, 서로가 상대편의 깊숙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서로가 피하게 된다. 사무적인 인간 관계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이러다보니 일단은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인적이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한국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다 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그러나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일본사람들이 더 개인적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더 끈적끈적한 인간의 정으로 어우러져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최근 京都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교 校門지도가 있었다. 학교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지도내용이란 茶髮(차빠쓰) 즉 머리카락에 물들인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는 내용인 것이다. 고등학생 이지만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수두룩하다. 뭐 대학에서는 남학생인 경우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버려야 머리가 아프지 않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예고를 했음이 당연하다. 교육의 근거는 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교칙이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학교. 학교에 등교했다가 돌아가는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학교에 공부하러 등교한 학생들을 돌려 보내는 것은 교육권에 위반된 사실이요,다른 하나는 차빠쓰가 다른 한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 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반발의 근거로도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가 등장하니 학교선생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진다.
2000/02/11
2000/02/11
==> 발전이란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이 만나 충돌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서로에 대한 배려로 같은 의견만을 말하거나 충돌을 피해버리면 과연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 이것이 일본은 가질 수 없는 한국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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